본문 바로가기

세상을 보는 창/느낌있는 여행

서오릉 - 구중궁궐의 암투가 전해지는 조선왕릉

 

서오릉 - 구중궁궐의 암투가 전해지는 조선왕릉

 

조선왕조의 무덤은 모두 122기인데 이 가운데 능이 42기이고 원이 14기이며 묘가 66기이다.

능은 왕과 왕비의 무덤이며 원은 왕세자와 왕세자빈 그리고 왕을 낳은 생모의 무덤이다. 그외 왕족의 무덤은 묘라고 칭한다. 북한에 있는 제릉과 후릉을 제외한 40기의 능이 현재 남한에 있으며 이들 왕릉은 그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인정 받아 2009년 6월 30일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그 중 수도권 서쪽에 있는 서오릉에는 구중 궁궐에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야만 했던 원비와 계비의 능이 있다.

 

 

 

 

경릉은 세조의 맏아들이었으나 왕위에 오르지 못한 의경세자와 소혜왕후의 능이다.

후에 의경세자의 둘째 아들이 성종에 즉위하면서 덕종으로 추존되었고 소혜왕후는 인수대비가 되었다, 인수대비는 며느리인 폐비윤씨와의 갈등과 더불어 폐비윤씨 사후에는 손자인 연산군과의 갈등으로 고통 속에 절명한다.

불경에 조예가 깊었으며 총명하고 학식이 깊은 분이었다고 한다.

 

 

창릉은 세조의 둘째 아들인 예종과 계비 안순왕후의 능이다.

예종도 덕종과 마찬가지로 세조의 아들인데 병약하여 즉위 1년여만에 병사하였다. 계비 안순왕후는 원비인 장순왕후가 인성대군을 낳고 산후병으로 죽자 세자빈이 되었고 예종이 즉위하자 왕비로 책봉되었다.

 

 

홍릉은 영조의 원비 정성왕후의 능이다.

숙종과 희빈 장씨의 아들인 경종이 죽자 숙빈 최씨의 소생인 영조가 왕위에 올랐다. 영조가 연잉군이었을 때 혼례를 올렸고 왕위에 오르자 왕비가 되었으나 슬하에 소생없이 평생 숙종과 경종의 부인을 극진히 모시며 살았다.

영조의 곁에서 오랜 시간 왕비의 자리에 있었으나 왕자도 공주도 낳지 못하는 허울뿐인 왕비의 자리에 그녀는 66세까지 가시방석을 깔고 살았다.

 

 

익릉은 숙종의 원비인 인경왕후의 능이다.

11세에 세자빈이 되었고 슬하에 공주 2명을 두었으나 20세에 천연두를 잃다가 죽었고 공주들도 오래 살지 못했다. 그리고 남편인 숙종은 죽은 후에도 원비가 아닌 계비의 곁으로 갔다.

 

 

명릉은 숙종과 제1계비 인현왕후, 그리고 제2계비 인원왕후의 능이다.

숙종은 정비인 인경왕후가 죽고 들어온 인현왕후와 나란히 자리를 함께 했고 그 맞은편에 제2계비인 인원왕후의 능이 있다. 숙종이 인경왕후 곁이 아니라 한때 폐위 시켰던 인현왕후와 나란히 있는 모습은 의아스러웠지만 한편 흐믓하기도 했다. 드라마를 많이 본 탓일게다.

놀라운건 서오릉 안에 이들의 연적인 희빈 장씨의 묘가 같이 있다는 것이다.

 

 

서오릉에는 5기의 능외에 사도세자의 생모인 영빈 이씨의 묘, 수경원이 있고 순화세자의 묘, 순창원이 있으며 희빈 장씨의 묘, 대빈묘가 있다.

숙종과 원비, 그리고 제1계비, 제2계비, 희빈 장씨까지 한 남자와 권력을 두고 치열한 투쟁을 벌였던 주인공들이 한자리에 있다니 참으로 얄궃다. 희빈 장씨의 묘는 원래 경기도 광주에 있었는데  이곳으로 옮겨졌다. 

 

 

 

무력으로 왕위를 찬탈한 아버지를 이어 억지로 왕위에 올랐으나 단명한 덕종(추존왕)과 예종, 지아비의 사랑도 받지 못하고 슬하에 자식도 없이 허울뿐인 왕비 자리를 지켜야했던 정성왕후, 10살 어린 나이에 궁에 들어와 채 10년을 살지 못하고 죽은 인경왕후, 권력의 암투에 처절하게 죽어갔던 여인들이 있는 곳이 서오릉이다.

살갗에 와 닿는 가을 냉기가 날씨탓인지 이 곳에 서린 한 때문인지 도무지 모르겠다.